엄마잠옷

2015. 8. 3. 23:29- Monologue

내게는 잠옷이 있다.
30년된 잠옷.
30년인지 더 된 잠옷인지는 모르나
엄마가 젊었을때부터 입었던 분홍색 색바랜 레이스 긴 잠옷.
어릴때 날씬했던 엄마가 이 잠옷을 입고 있으면
얼마나 샤랄하하고 예뻐보이고 하늘하늘하고 천사같던지
어린나이에 얼른 벗으라 칭얼대고 잠옷의 2/3을 질질 끌면서 어떠냐고 예쁘냐고 하며 다녔는지 모른다.
학창시절때도 간간히 입어보고 벗어놓고를 반복하다가
서울로 올라오면서 아예 허락을 받고 엄마 잠옷을 갖고왔다.

나는 이 잠옷이 좋았다.
내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엄마가 그나이에 입었던 잠옷을
나는 그때 그 엄마나이가 훌쩍 지나서도 입고 있다는 사실이.
무언가 엄마와 동시대를 하나의 잠옷으로 함께 하고있다는 사실이.

얼마전
꿈에서 엄마가 돌아가셨다.
아니 이미 돌아가신 뒤였고 돌아가신 장면 없이
꿈에서는 -이세상 분이 아니지- 라고 내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.
막막했다.
아빠도 동생들도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도.
이루어 말할수 없을 만큼 서글펐다.

꿈에서 깬 뒤에도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고
그날은 엄마에게 안부전화 조차 하지 못했다.
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는 마음에서.
무슨일 없냐는 한통의 전화가 괜시리 더 걱정을 끼칠까봐.


엄마잠옷을 입으면 그때의 엄마를 떠올려본다.
지금은 자식들 걱정에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지만
한창 젊었을, 예쁘게 꾸미고 다녔을, 젊을을 즐겼을,
예뻤을 내 젊은 엄마의 시절을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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